프롤로그 / 평생현역시대(윤치영박사의 45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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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평생현역시대(윤치영박사의 45번째 책)
아직, 내 인생에는 할 일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떴다. 몸이 먼저 말한다.
‘오늘은 좀 쉬자.’
그런데 일정표를 펼치면 마음이 다른 말을 한다.
‘오늘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네.’
몸은 천근만근인데 마음은 심쿵달쿵이다. 이불 속에서는 은퇴하고 싶다가도, 누군가 배우러 온다는 소식에는 다시 출근할 힘이 난다.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는 순간 생각한다. 오늘도 갈 곳이 있고, 할 일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는 이런 날들을 살아가며 ‘평생현역시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왔다.
처음부터 거창한 인생론을 펼칠 생각은 없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생각, 수강생의 질문 앞에서 오히려 내가 배운 것, 지인의 안부 전화 한 통에 마음이 풀린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운동화 끈을 매다가 숨이 찼던 일도, 밥 한 끼 사겠다고 사람들을 불러 놓고 다른 사람이 먼저 계산해 버려 생색만 낸 일도 글이 되었다.
살아보니 인생의 중요한 수업은 꼭 강의실에서만 열리지 않았다. 고깃집 계산대 앞에서도, 혼자 걷는 산길에서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이 부글부글 끓는 순간에도 수업은 시작됐다. 다만 그때는 몰랐다. 조금 지나 돌아보면 그 자리에 배울 것이 놓여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왔다. 면접을 앞둔 학생, 발표가 두려운 직장인,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리더를 만났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말을 많이 했지만 정작 자기 마음은 전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과 마주 앉으며 점점 분명해진 것이 있다. 말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태도가 묻어난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믿지 못하면 목소리가 자꾸 뒤로 숨고, 상대에게 관심이 없으면 질문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이 급하면 남의 말을 자르고, 인정에 인색하면 대화는 금세 막힌다. 그래서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듣는 태도를 돌아보게 되고, 듣는 태도를 고치다 보면 사람을 대하는 마음까지 살피게 된다.
내가 말하는 “박수받는 스피치, 박수받는 인생”에는 그런 바람이 담겨 있다. 무대에서 말을 잘해 받는 박수도 기쁘지만, 함께 일한 사람이 다시 찾고, 헤어진 뒤에도 누군가 반갑게 전화를 걸어주는 삶을 살고 싶다.
평생현역은 나에게 그런 삶의 이름이다.
평생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뜻도,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삶에 참여할 자리를 가지고 싶다는 뜻이다. 오늘 배울 것이 있고, 내 힘으로 해볼 일이 있으며, 누군가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현역의 자리는 여러 곳에 있다. 일터에도 있고, 배움의 자리에도 있고, 이웃을 돕는 현장에도 있다. 작은 화분을 돌보거나 처음 가는 길을 걸으며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는 시간에도 우리는 자기 삶의 현역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마음먹는다고 몸이 저절로 따라주지는 않는다. 나 역시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앞에서 괜한 큰소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걷고, 움직이고, 먹는 습관을 돌아본다. 오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을 감당할 몸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라도 배우는 중이다.
나는 평생현역의 조건으로 체력과 수입, 그리고 ‘연애세포’를 이야기하곤 한다.
여기서 연애세포란 사람과 세상을 향해 설렐 수 있는 마음이다. 좋은 음악에 귀가 열리고,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고, 처음 해보는 일 앞에서 가슴이 조금 뛰는 감각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감각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내일이 오늘과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살아가려 애쓰는 나의 생각과 경험이 담겨 있다.
실패하고도 꿈을 놓지 않는 마음에 대해 썼다. 무언가를 잃은 뒤에야 발견한 가능성도 있었고, 넘어졌기에 주워 들 수 있었던 배움도 있었다. 실패한 순간에는 막막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경험이 누군가에게 건넬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욱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썼다. 잠깐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오래 후회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말하기 전에 멈추는 힘을 생각했다. 상대를 이기는 말 한마디보다 관계를 지키는 짧은 침묵이 더 필요할 때가 있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에 대해서도 썼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내가 아는 지식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면 내 세상은 거기서 멈춘다. “그렇군요”, “일리가 있습니다”, “제가 몰랐네요”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배움은 다시 시작된다. 오래 가르친 사람일수록 더 자주 연습해야 할 말이라고 나 자신에게 당부한다.
혼자 즐거워지는 방법도 생각했다. 함께할 사람이 있어 행복한 날도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하는 날도 많다. 걷고, 배우고, 키우고, 만들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 내 즐거움을 다른 사람의 일정에만 맡겨 두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혼자만 잘 지내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잘 지내시죠?”라는 전화 한 통이 하루의 표정을 바꾸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농담처럼 생사 확인 전화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반가웠다. 누군가 나를 떠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났다. 그 마음을 받았으니 나도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0
돌아보면 내가 쓴 글들은 결국 몇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오늘 무엇에 관심을 기울였는가. 누구에게 고마워했는가. 모르는 것을 물었는가. 내 고집 때문에 닫아 버린 문은 없는가.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내 인생의 기본 모드를 긍정, 적극, 개방, 사랑, 효율, 창의, 열정으로 설정해 놓고 살고자 한다. 그렇다고 늘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는 긍정이었다가 오후에는 불만으로 바뀌고, 사랑을 이야기한 날 가까운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말할 때도 있다.
그러니 이 책은 모든 것을 실천한 사람이 내놓는 정답지가 아니다. 잊어버린 마음을 다시 꺼내 보고, 흐트러진 태도를 고쳐 앉으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독자에게 건네는 말이면서 나 자신이 거듭 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I’m I, I’m You, I’m World.”
나는 나를 바로 세우고, 당신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 내 힘을 키우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원칙을 지키되 새로운 목소리에 귀를 열어 두고 싶다. 거기에 재미까지 보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 여러분도 자기 삶의 장면 하나를 떠올렸으면 한다. 미뤄 둔 전화, 다시 배우고 싶은 것,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 아직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꿈 말이다. 책장을 덮은 뒤 그중 하나를 행동으로 옮긴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꽤 좋은 만남을 가진 셈이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누군가를 만나 정성껏 듣고, 내가 아는 것을 나누고, 새로운 것을 하나 배울 수는 있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보려 한다.
내일 아침에도 몸은 말할지 모른다.
‘오늘은 좀 쉬자.’
그때는 몸의 사정도 잘 들어주어야겠다. 잠깐 쉬었다가, 천천히 신발 끈을 묶을 생각이다.
아직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아직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아직 내 인생에는 할 일이 있다.
화술경영가 윤치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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