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하게 나이 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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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하게 나이 들기
식당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 보자.
주문한 음식은 나오지 않고, 나보다 늦게 들어온 옆자리 손님에게 먼저 음식이 나간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배가 고파지니 이해심도 바닥을 드러낸다. 시계를 보고, 주방을 보고, 마침내 지나가는 직원을 불러 세운다.
“여보세요. 우리가 먼저 왔는데 왜 저쪽부터 줍니까?”
젊은 직원이 당황하며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주문이 누락됐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여기서 끝내면 좋으련만, 화가 난 입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른다.
“죄송하다고 하면 다예요? 기본이 안 되어 있네. 책임자 나오라고 해요.”
그때 함께 앉아 있던 어린 손주가 소매를 잡아당긴다.
“할아버지, 저 누나 아까부터 계속 죄송하다고 하잖아.”
순간 말문이 막힌다.
음식이 늦게 나온 잘못을 따지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말이 지나치게 나가고 있었다. 직원에게 기본을 가르치려다가 손주에게 기본을 배운 셈이다.
그날 식탁에서 가장 어른스러웠던 사람은 나이가 가장 어린 아이였다.
우리는 종종 나이를 권위로 착각한다. 오래 살았으니 더 많이 알고, 더 정확히 판단하며, 더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월은 많은 경험을 준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는 것과 그 경험을 품격 있게 사용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오래 쓴 칼이 저절로 명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돌보지 않으면 녹이 슬고, 함부로 휘두르면 가까운 사람부터 다친다. 말도 그렇고, 나이도 그렇다.
실수했을 때 구차한 변명보다 담백한 사과를 먼저 건네는 사람. 약한 사람 앞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는 사람.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감정의 찌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쏟아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우리는 비로소 ‘어른의 향기’를 느낀다. 굳이 나이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을 잔뜩 움츠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오래도록 살아왔지만 여전히 미숙함투성이다.
솟구치는 화를 가라앉히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여전히 답답하다. 강단에서는 경청과 배려를 말하면서도, 정작 일상에서는 내 말부터 끝내고 싶은 순간이 있다.
말을 가르치는 사람이니 말을 잘 다스릴 것 같지만, 내 입 하나 다스리는 일이 남에게 말하기를 가르치는 일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내 뜻은 그게 아니었어.” “당신이 먼저 그랬잖아.” “내가 살아 봐서 아는데…….”
돌이켜 보면 이런 말 뒤에 숨어 있던 것은 지혜보다 자존심인 경우가 많았다. 잘못을 설명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잘못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말은 의외로 짧다.
“내 말이 지나쳤네. 미안하네.”
사과하면 작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먼저 고개를 숙이고 나니 오히려 관계가 편안해진다. 끝까지 옳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보다, 잘못을 인정했을 때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자존심을 지키려고 버텼는데 관계가 멀어지고,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았더니 사람의 마음이 돌아온다. 성숙에는 이런 반전이 있다.
나이를 먹었다고 마음이 저절로 너그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참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조급함도 함께 늙고, 듣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고집도 함께 자란다. 세월이 내 편이 되어주기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찾아온다. 생일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돌아온다. 그러나 성숙은 다르다. 불편한 순간에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쌓인다.
말을 끊고 싶을 때 상대의 마지막 문장까지 들어보는 것. 화가 났을 때 곧장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놓는 것. 가족에게 “그것도 몰라?”라고 말하려다가 “내가 설명해 줄게”로 바꾸는 것. 후배가 나보다 나은 의견을 내놓았을 때 “좋은 생각이네” 하고 인정해 주는 것.
작은 일이지만 막상 해 보면 쉽지 않다. 특히 밖에서는 너그럽다가도 집에 돌아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기 쉽다. 그러니 내 성숙의 정도는 낯선 사람의 칭찬보다 가족의 표정에서 먼저 살펴볼 일이다.
나는 밖에서 존경받는가를 묻기 전에, 내 곁의 사람은 나를 편안해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평생현역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계속 일하고, 배우고, 세상과 연결되어 사는 일은 소중하다. 그만큼 함께 일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달라진 세상을 인정하며, 필요할 때 기꺼이 배우는 태도도 중요하다.
왕년의 경력으로 자리를 지킬 수는 있어도, 오늘의 태도가 불편하면 사람의 마음까지 붙잡기는 어렵다.
성숙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어제 너그러웠다고 오늘의 짜증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실수했다고 내일 더 나아질 기회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알아차렸다면 사과하고, 지나쳤다면 돌아오고, 부족했다면 다시 연습하면 된다.
나는 흠잡을 데 없는 노인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잘못을 알아차리는 시간이 조금 짧아지고, 사과하는 말이 조금 빨라지며, 다른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는 마음이 조금 넓어졌으면 좋겠다.
내일도 나이는 한 살 더 먹는 쪽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마음까지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오늘의 내게 달려 있다.
그래서 오늘도 연습한다. 한마디 덜 쏘아붙이고, 한 번 더 기다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미루지 않는 연습을.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며 “그분 곁에서는 마음이 편했어”라고 말.해 준다면, 나는 꽤 괜찮게 나이 든 것 같다.
화술경영가 윤치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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