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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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 사랑의 방식 ― 필요한 날, 필요한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
- 한빛국제뉴스 칼럼이자 평생현역시대 책 내용中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버티는가.
젊을 때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실력을 쌓고, 돈을 벌고, 이름을 알리면 인생이 든든해질 줄 알았다. 물론 그것들도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세월을 건너다 보니 알겠다. 내 이름 앞에 붙는 직함보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한 사람이 더 큰 힘이 되는 날이 있다는 것을.
나는 강의와 코칭에서 행복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말을 잘하는 기술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 사랑 이야기라니,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의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발표를 잘하고 싶은 것도, 설득을 잘하고 싶은 것도, 결국 누군가와 더 잘 연결되고 싶어서다.
최인철 교수의 여행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나는 이렇게 풀어 설명한다.
“여행에는 행복의 종합선물세트가 들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걷고, 먹고, 말하는 즐거움이 한 상자에 담겨 있지요.”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온 뒤 오래 남는 것은 의외로 유명한 풍경만이 아니다. 길을 잘못 들어 함께 웃었던 일, 비를 피해 들어간 식당에서 나눠 먹은 국수, 힘들어 뒤처졌을 때 누군가 걸음을 늦춰준 순간이다.
멋진 경치 앞에서 찍은 사진보다 “괜찮아? 조금 쉬었다 가자”라는 한마디가 더 선명하게 남기도 한다. 여행의 풍경 속에 사람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추억은 온기를 갖는다.
게리 채프먼은 사랑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인정하는 말, 선물, 봉사, 신체 접촉, 함께하는 시간이다. 나는 수강생들에게 이를 쉽게 풀어 말한다. 인정해주기, 선물하기, 도와주기, 다정하게 손잡아주기, 그리고 함께해주기라고.
사람마다 마음에 와닿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사랑을 느끼고, 누군가는 말없이 챙겨주는 행동에서 사랑을 느낀다. 그러니 내가 주기 편한 사랑만 건네서는 상대의 마음에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다섯 가지 가운데 요즘 내 마음에 오래 머무는 것은 ‘함께해주기’다.
다음과 같은 부부를 상상해보자.
평생 바쁘게 살아온 남편이 있었다. 가족을 위해 일했고, 생활비를 밀린 적이 없었으며, 기념일이면 선물도 챙겼다. 스스로는 제법 괜찮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남편은 억울했다.
“뭐가 없다는 거야? 집도 마련했지, 아이들 공부도 시켰지, 지난번 생일에는 가방도 사줬잖아.”
말이 길어질수록 남편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마치 결산보고서를 발표하듯 자신이 해준 일들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아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당신한테 받은 물건을 물어본 게 아니야.”
얼마 뒤, 아내가 병원 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남편은 습관처럼 지갑부터 꺼냈다.
“택시 타고 다녀와. 끝나면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아내는 돈을 받지 않았다.
“오늘은 돈 말고, 당신이 같이 가주면 안 돼?”
남편은 그날 처음으로 아내와 나란히 병원 대기실에 앉았다. 특별히 해줄 일도 없었다. 접수는 아내가 했고, 진료는 의사가 봤다. 자신은 옆에 앉아 외투를 들어주고, 차례를 기다렸을 뿐이다.
검사를 마치고 나온 아내가 남편의 팔을 잡았다.
“오늘은 참 좋다.”
남편이 멋쩍게 웃었다.
“내가 뭘 했다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뭘 해주려고 하지 않고, 내 옆에 있어줬잖아.”
남편은 오래도록 그 말을 곱씹었다. 자신이 사랑의 증거라고 내밀었던 영수증들 사이에, 정작 아내가 기다린 자신의 자리는 비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해준 일’로 계산한다.
얼마를 썼는지, 무엇을 사줬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해줬는지 헤아린다. 그러면서 상대가 서운해하면 묻는다.
“이만큼 해줬는데, 대체 뭐가 부족해?”
하지만 상대가 기다린 것은 더 큰 선물이 아니라 식탁 맞은편의 빈 의자를 채워주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해결책 열 가지가 아니라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며 끝까지 들어주는 십 분이었을 수도 있다.
스피치를 가르치는 나 역시 이 대목에서는 자주 나를 돌아본다. 상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좋은 조언부터 꺼내려 하지는 않았는가. 마음을 들어달라는 사람 앞에서 말솜씨만 발휘하지는 않았는가.
말을 잘한다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기다려주지 못한다면, 그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보고 싶다고 했더니 바쁜 이유를 길게 설명하는 사람보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이 반갑다. 힘들다고 했을 때 인생의 정답을 늘어놓는 사람보다, 곁에 앉아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열린다.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거창한 위로도 필요 없다.
“밥은 먹었어?” “잠깐 걸을까?” “오늘은 내가 같이 갈게.”
그 짧은 말에 하루를 견딜 힘이 생긴다.
다만 함께한다는 것은 같은 공간에 몸을 두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마주 앉아 각자 휴대전화만 보고 있다면, 식탁에는 두 사람이 있어도 대화에는 아무도 없을 수 있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일은 어떻게 됐어?” 하고 기억해 묻는 전화 한 통이 더 가까운 동행이 된다.
함께한다는 것은 상대의 삶에 관심을 두는 일이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어디가 아픈지, 어떤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사람이 귀해진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은 많은데 막상 마음이 허전한 저녁에는 선뜻 누를 번호가 없을 때도 있다. 아는 사람은 많은데 나의 오늘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드문 것이다.
『평생현역시대』를 말하면서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평생현역은 오래도록 일하고 수입을 만드는 삶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을 반가워하는 마음,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도 현역이어야 한다.
몸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마음은 이미 관계에서 퇴직한 채 살아서는 곤란하다. “다 귀찮아”라며 만남을 밀어내고, “알아서 살겠지”라며 안부를 접고,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애정을 거두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오늘이 아깝다.
필요한 날, 필요한 자리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복이다.
늘 씩씩한 사람에게도 기대고 싶은 날이 있다. 남을 웃기는 사람에게도 말없이 울고 싶은 저녁이 있다. 평생 가족을 책임진 사람에게도 “오늘은 내가 할게. 당신은 좀 쉬어”라는 말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러니 누군가 내 곁에 와주기만 기다리지는 말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안부를 묻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날짜를 잡자. 사랑하는 사람의 일정에 내 자리를 요구하기 전에, 내 일정에 그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자.
나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하라. 죽기 살기로.”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천은 의외로 소박하다. 다음에 보자는 말을 오늘의 약속으로 바꾸고, 마음속 걱정을 안부 전화로 바꾸고, 언젠가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오늘 저녁의 산책으로 바꾸는 것이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해준다면 좋겠다.
“참 많은 것을 해준 사람이었어.”
그리고 잠시 뒤, 더 다정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보태준다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준 사람이었어.”
화술경영가 윤치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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