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사람만 만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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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사람만 만나는 시대
모임은 줄였는데, 노래는 세 곡을 불렀다
젊었을 때는 사람 만나는 데도 체력이 넘쳤다. 누가 모임을 만든다고 하면 일단 이름부터 올렸다. 무슨 모임인지보다 누가 나오는지가 궁금했고, 나를 부른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모임에 가고, 모임이 끝나면 또 다른 모임으로 옮겨갔다. 달력에 빈칸이 있으면 왠지 인생을 게으르게 사는 것 같았다. 명함은 쌓이고, 휴대전화 연락처는 늘어났다. 그때는 그것이 내 세상이 넓어지는 증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연락처는 수천 명인데, 막상 편하게 전화해서 “밥이나 먹자”고 할 사람 앞에서는 손가락이 멈춘다. 아는 사람은 많은데, 내 피곤한 얼굴을 그대로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젊어서는 모임이 끝나면 다음 장소를 물었는데, 이제는 끝나기도 전에 귀가 시간을 헤아린다. 마음은 아직 한창인데 몸이 슬쩍 귀띔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그래서 하나둘 모임을 줄인다.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뒤 나를 회복시키는 데 예전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한때는 하룻밤 자면 풀리던 피로가 이제는 다음 날 일정표까지 따라온다. 모임 회비는 통장에서 빠져나가지만, 모임 체력은 온몸에서 빠져나간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담배 끊으면 일망, 술 끊으면 이망, 모임 끊으면 삼망, 곡기 끊으면 사망.”
말장난이지만 끝부분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힘에 부친다고 하나씩 끊다 보면, 어느 날 나를 세상과 이어주던 끈까지 끊어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모든 모임에 끝까지 출석 도장을 찍을 수는 없다. 평생현역으로 살겠다고 나섰다가 모임에 개근하느라 정작 내 일에 결석해서야 되겠는가.
나 역시 많이 정리했다. 얼굴을 보여주기 위한 모임, 빠지면 손해 볼 것 같아서 나가던 모임, 혹시 무슨 기회라도 생길까 싶어 붙들고 있던 모임들이 어느새 줄었다. 팬데믹을 거치며 약속이 뜸해졌고,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뒤에도 예전의 모임을 모두 되살리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허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홀가분했다. 많은 사람 사이에서 돌아가며 인사하던 시간에, 몇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끝까지 나눌 수 있었다. 내 차례가 올 때까지 말을 준비하지 않아도 됐고, 별다른 성과가 없는 날에도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다만 ‘필요한 사람만 만난다’는 말은 조금 고쳐 쓰고 싶다. 그 필요를 자꾸 쓸모로 계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어떤 도움이 되는지 따지다 보면 사람 만나는 일마저 거래가 된다.
함께 있어 마음이 편한 사람도 필요하다. 시답잖은 농담에 웃어줄 사람, 내 이야기가 조금 길어져도 들어줄 사람, 아무 용건 없이 나를 떠올려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그렇게 관계를 정리했다고 생각하던 내게, 시월의 마지막 밤 작은 반전이 찾아왔다.
10월 31일. 토요일이자 핼러윈이었다. 나는 그날도 늦게까지 코칭을 했다. 카이스트에 재학 중인 7학기 차 학생의 수강 등록까지 마치고 나니 하루가 제법 알차게 채워졌다. 학생은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나는 그 준비를 돕는 일을 했으니 보람 있는 시월의 마감이었다.
이제 조용히 정리하고 쉬면 됐다. 다음 날이면 11월이었다. 새로운 달의 수업과 코칭을 생각하며 차분하게 하루를 접으려 했다.
그때 나를 부르는 연락이 왔다.
조금 전까지 피곤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속으로 말했다.
‘그래, 불러줄 때 나가야지.’
사람 마음이 참 재미있다. 나가기 전에는 몸이 무겁더니, 반가운 얼굴을 보니 말이 먼저 풀렸다. 한 잔을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노래까지 부르게 됐다. 한 곡조만 할 요량이었는데 이용의 「잊혀진 계절」에 이어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까지 이어졌다.
모임을 줄이며 조용히 살겠다던 사람이 시월의 마지막 밤을 꽤 성대하게 마감한 셈이다.
내가 나를 보고 웃었다.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던 사람은 어디 가고, 마이크를 놓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몸이 피곤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반가운 사람들과 웃는 동안에는 그 피곤함이 잠시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날 새삼 알았다. 모임을 줄인 자리에 여유가 생기니, 이렇게 마음 가는 부름에 응할 힘도 남는다는 것을.
의무감으로 약속을 빼곡히 채웠다면 그날의 연락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또 나를 부르는 모든 소리를 귀찮다고 밀어냈다면, 시월의 마지막 밤은 강의실 불을 끄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 밤에는 적당한 여백과 반가운 부름이 함께 있었다.
평생현역으로 살아가려면 내 일을 지켜야 한다. 체력도 아껴야 하고 혼자 쉬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누군가의 부름에 겉옷을 걸치고 나설 마음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모임의 숫자는 줄어들 수 있다. 대신 한 사람의 얼굴은 더 자세히 보이고, 한 번의 만남은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수십 명에게 근황을 설명하느라 목이 쉬는 날보다, 몇 사람과 실컷 웃다가 목이 쉬는 밤이 나는 점점 좋아진다.
물론 불러준다고 무조건 달려갈 일은 아니다. 쉬어야 할 날에는 쉬어야 한다. 다만 만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의 연락이라면, 피곤하다는 말부터 꺼내기 전에 잠깐 생각해볼 일이다.
‘저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나는 어떤 표정일까?’
그날 나는 웃는 얼굴로 시월을 마감했다. 하루의 끝에는 코칭을 마친 보람이 있었고, 그 뒤에는 사람들과 나눈 웃음과 노래가 보너스처럼 붙었다.
이제는 만날 사람만 만나며 살겠다고 했더니, 그 ‘만날 사람’이 나를 불러주었다.
그래서 나갔다. 그리고 노래까지 불렀다.
모임은 줄였지만, 아직 마이크를 놓을 생각까지는 없다.
화술경영가 윤치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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