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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에서 찾은 상부상조의 지혜

정호영 입력 2026.10.31 17:10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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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에서 찾은 상부상조의 지혜

서비스 관리'에서 '관계 회복'으로, 전통적 상부상조의 현대적 재해석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복지 지표는 유례없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예산은 대폭 늘어났고, 제도적 안전망은 촘촘해졌으며, 전문가들의 개입 또한 매우 정교해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장의 목소리는 딴판이다. 이웃 간의 단절, 독거노인의 고독사,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극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복지의 규모는 커졌는데, 사람들의 삶은 왜 더 외롭고 불확실해졌는가.

이 괴리의 원인은 현대 복지가 빠지기 쉬운 구조적 함정에 있다. 복지를 단순한 '서비스 수혜'나 '행정적 관리'의 영역으로 치환하면서, 인간이 가진 본연의 자주성과 이웃 간의 따뜻한 관계망을 상실해온 까닭이다. 서비스는 늘었지만 주민 스스로 삶을 꾸리는 힘은 약해졌고, 프로그램은 많아졌지만 정작 영혼을 덮어줄 관계는 옅어졌다. 이제 복지는 ‘얼마나 많이 주느냐’를 넘어 ‘어떻게 관계를 회복시킬 것인가’로 실천의 패러다임을 대전환해야 한다.

그 길을 묻는 우리에게 한국 전통사회의 상부상조 관행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닌, 오늘날 복지가 배워야 할 훌륭한 실천 원형(Prototype)을 제시한다.

우선, 전통사회의 계(契)와 향약(鄕約)은 위험을 공동으로 감당하던 '생활 연대 체계'였다. 오늘날의 복지기관들은 단순히 서비스를 직접 배달하는 기관에 머물지 않고, 주민과 주민을 잇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례관리를 전문가의 일방적 개입에 맡길 것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돌보는 '주민 주도 상호부조 네트워크'로 확장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가난한 이웃의 장독을 몰래 채워주던 '된장서리'나 마당을 슬쩍 쓸어주던 '마당쓸이'의 지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움받는 이의 자존감을 배려한 이 은근한 연대는 현대 복지가 자주 빠지는 '수치심을 주는 지원'을 경계하게 한다. 서류와 신청주의에 매몰된 발굴체계를 넘어, 동네의 일상적인 관계망 속에서 낙인 없이 은근하게 스며드는 복지 접근이 더욱 윤리적이다.

동시에 노동력 공백을 함께 메우던 '울력'과 재난 시 집을 함께 세워주던 '화막꾸리기'는 돌봄을 사회적 인프라로 바라보게 한다. 이는 주민 간 '돌봄 품앗이'를 활성화하고, 재난 시 단순한 성금 전달을 넘어 일상과 관계를 복원하는 긴 호흡의 회복 네트워크로 전환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나아가 버려진 아이를 온 마을이 함께 거두었던 '개구멍받이'의 정신처럼, 위기 대상을 특정 전문기관의 일로만 넘기지 않고 지역 사회 전체가 공동의 윤리로 품어내는 책임의식이 시급하다.

결국 복지의 최종 지향점은 사람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세우는 데 있다. 과도한 보호와 시혜는 때로 당사자의 자주성을 해치고 무력하게 만든다. "잘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살아갈 힘과 역할을 북돋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에서 찾은 상부상조의 지혜가 현대의 세련된 사회복지 기술과 결합할 때, 비로소 제도의 틈새를 메우는 따뜻한 온기가 피어날 수 있다. 복지는 국가나 특정 기관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삶터의 이야기다. '관리' 중심의 복지에서 '관계' 중심의 복지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풍요 속의 빈곤과 제도 속의 고립을 극복한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글/관장 정호영(장수군노인장애인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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