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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하루

김영란 입력 2026.08.27 10:05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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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수업을 마치고 교육희망 네트워크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참석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가면 과식도 하고 에너지도 분산될 것 같아, 그 시간만큼은 고요한 나 자신과 마주하기로 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불행 중 하나를 혼자 조용히 방 안에 머물지 못하는 것에서 찾았다.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자신을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쉼보다 움직임이 좋았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하고, 에너지를 바깥으로 쏟아내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다. 고요함 속에 머무는 일이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폴짝폴짝 뛰는 아기의 생기를 바라보고, 만학도들이 돌아가며 보내주시는 과일의 단내를 느끼고, 내일은 “따뜻한 밥 먹고 가라”며 밥 한 끼를 내어주시는 아름다운 어른의 손을 마주한다.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말없이 들어주시고 위로와 힘과 용기를 건네주시는 따뜻한 사람들. 생각해보면 삶을 평화롭게 하는 것은 거창한 명상이나 수련만이 아닌 것 같다.

고마움을 기억하는 마음, 사랑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마음,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으로 마음을 소모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를 지극히 바라보시는 그분을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나를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 영화 <소풍〉을 보며 한참 나이 들어감에 젖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가, 들판에서 환하게 웃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 인생이라는 파도를 손잡고 건널 친구가 있다는 것. 그 또한 참 감사한 일이다.

해 질 무렵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고, 보름달을 향해 둥글어지는 달빛이 나를 비춘다. 생각의자에 앉아 바라보니 송사리 떼마저 폴짝폴짝 뛰며 둥근 원을 만든다.

요즘은 모임에 가는 일이 버겁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조금씩 힘에 부친다.

종일 ZOOM으로 수업을 하고도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한 것을 보면, 나도 어느새 정서적인 고요에 익숙해지고 있나 보다.

삶은 꼭 특별해야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오색빛 다리 위에 둥근 달빛 하나 걸리고, 오늘 하루 별일 없이 지나갔다는 것. 그저 이렇듯 평범하고 고요한 삶의 풍경이면 좋겠다.

아무 일 없이, 안온하기를. 그리고 내 곁을 스쳐가는 모든 이들의 삶에도 큰일 없기를 그저 고요하기를.
그저 평안하기를. 그것이면 충분한 하루다. 

글/김영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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