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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결 마음의 빛깔

김영란 입력 2026.10.17 09:17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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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결 마음의 빛깔

문장의 결을 살피고, 고운 우리말이 지닌 투명한 어조와 어순, 어휘의 감각을 헤아리며 살아간다. 우리가 아는 단어는 많지만, 정작 사용하는 언어의 폭은 얼마나 좁은가. 그 좁은 언어의 틈에서 오해가 생기고, 곡해가 번지며, 왜곡된 말들이 거센 물결처럼 마음을 휩쓴다. 그 말의 파편들이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끝내 마음을 황폐하게 한다는 사실이 어느 날 섬광처럼 나를 스쳤다.

왜 마음은 아픈가. 왜 가슴은 베인 자리처럼 오래도록 쓰린가. 생각해 보니 말 속에 진실을 감춘 채 겉으로 드러나는 얕은 언어로 서로를 찌르기 때문이었다. 말은 때로 다툼이 되고, 외면이 되며, 존재마저 내팽개치는 비참한 순간을 만든다.

말은 마음의 알갱이라고 배웠다. 숱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마음의 풍경이 달라진다. 감정이 거칠어질수록 언어는 좁아지고, 좁아진 언어는 서로를 아프게 한다. 불쑥 튀어나오는 사나운 말, 생각 없이 쏟아내는 무심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어둡게 할 수 있음을 이제는 조금 더 깊이 헤아린다.

삶의 순간마다 한 땀 한 땀 수놓듯 향기로운 언어로 나를 감싸게 하소서. 내 입술에서 시작된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빛 하나 밝혀주게 하소서.

페이스북에서 ‘해빛노트’라는 것을 보았다. 아름다운 문장을 필사하며 마음을 정화하고, 순수한 빛깔의 언어로 감동을 다시 새기는 노트였다. 문장을 옮겨 적는 일은 단순히 글씨를 쓰는 일이 아닐 것이다. 좋은 말을 마음에 들이고, 그 말이 생각을 바꾸고, 생각이 감정을 다독이며, 마침내 행동과 태도까지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남 탓과 세상 탓으로 하루를 물들이고, 한숨으로 삶의 여백을 채우는 일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어제는 YCY 아카데미에서 특강을 했다. 내 안에 오래 품어온 생각과 마음의 언어들로 강의를 채웠다. 강의가 끝난 뒤 한 여성분이 다가와 말씀하셨다. “강의가 참 우아해서 팬이 되었어요.”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언어의 결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것, 내 안의 생각이 타인의 마음에 작은 울림으로 남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었다.

배움은 깨달음에서 멈추지 않고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오늘의 깨달음을 내일의 실천으로 옮기며, 나부터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자리에 설 때마다 이 화두를 조용히 전하고 싶다.

선한 말, 생명을 살리는 말,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말, 사람 안에 잠든 생기와 희망을 움트게 하는 말. 그런 언어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 말 한마디가 마음의 풍경을 바꾸고, 마음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꾸며, 그렇게 달라진 삶이 세상을 조금씩 밝힌다.

교육자임이 감사합니다. 그 길을 걸으며 배우고, 깨닫고, 전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과 환경을 허락받았음이 고맙습니다.

가을이다. 나무는 잎을 내려놓으면서도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는다. 나도 이제 불필요한 말은 내려놓고, 오래 품어야 할 말은 마음에 새기며,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주는 언어로 다시 살아봐야겠다.

말을 가꾸는 일이 마음을 가꾸는 일이고, 마음을 가꾸는 일이 결국 삶을 가꾸는 일이므로. 오늘도 내 안에 고운 말 한 줌을 심는다. 그 말이 향기가 되고, 빛이 되고,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이 되기를 바라며.

글/김영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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