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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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통골의 무심한 생명력은 오늘도 흘러가는 구름을 묵묵히 떠받치고, 땅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삶의 의지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벌써 나뭇잎은 가을을 기다리는지 하나둘 흩어지고, 노란빛을 머금은 잎 사이로 산새들의 지저귐은 더욱 힘차다.
긴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나는 걸었다. 걸으니 장이 움직였고, 가슴에 산소가 돌았고, 굳어 있던 마음에도 다시 생기가 스며들었다.
그때 자연에게 배웠다. 고통도 멈춰 있으면 나를 붙잡지만, 움직이면 조금씩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잇몸치료를 하고 욱신거리는 입안을 감싸 안으며 수통골의 정기를 다시 품는다. 몸이 약해지는 순간에도 삶의 고삐를 놓지 않으려 한다.
베풂의 대명사인 찐친이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들 모두에게 푸짐한 동태탕 닭백숙을 대접했다. 정성 가득한 음식 한 상에 몇 일 째 든든하다.
또 찬양단으로 시작한 가디너스가 용문봉사회 소속으로 어르신들을 찾아뵈었다.
춤추고 노래하고 재롱을 피우며 함께 웃는 동안, 봉사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빛을 나누는 일임을 느꼈다.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오랜 세월 굳어진 무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웃음조차 낯설어진 얼굴들. 문득 생각했다.
나에게도 늙음은 반드시 올 텐데, 나는 앞으로 몇 해나 이렇게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낼 수 있을까.
치과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고운 전문성을 가진 절친이 운전해주며 자신과 상담자의 고통과 좌절, 낙심과 불안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픈 이를 감싸며 무슨 말로 위로할까 생각하다가, 그저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함께 먹기로 했다.
우리 동네의 양곰탕집. 진한 국물과 푸짐한 손맛에 주인의 정까지 우러나는 곳이다.
따뜻한 국물을 천천히 삼키니 치통도 조금씩 가라앉고, 우리는 말없이 국그릇을 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물과 함께 마음속에 고여 있던 우울까지 조금씩 걷히는 것 같았다.
그래. 사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구나. 아픈 날에는 따뜻한 국물 한 그릇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힘든 날에는 친구의 운전으로 기대어 가고, 좋은 날에는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웃는 것.
그렇게 한 계절을 견디고, 또 한 계절을 건너는 것.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이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알겠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웃을 이유를 찾아 웃는 사람이 이미 삶을 이기고 있다는 것을.
오늘도 감사라는 보물을 하나 찾아낸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다. 인생이 뭐 별거 있나.
아프면 잠시 쉬고, 힘들면 서로 기대고, 좋으면 마음껏 웃고, 다시 걸으면 되는 것.
오늘도 한바탕 살아내는 것. 그것이 결국 인생인것을
글/김영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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